본문으로 바로가기

1934년 경성의 호구조사…"주민 30%가 외국인"

문화·연예

연합뉴스TV 1934년 경성의 호구조사…"주민 30%가 외국인"
  • 송고시간 2017-08-14 22:59:20
1934년 경성의 호구조사…"주민 30%가 외국인"

[앵커]

일제강점기 서울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촌과 남대문 등지에 몰려살았다고 하는데요.

1934년 경성의 호구를 보여주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신새롬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1934년, 서울의 최하위 행정단위였던 정(町)과 동(洞)의 직업별 민족별 호구를 담아낸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입니다.

혜화동과 창신동, 계동 등 지금도 사용 중인 지명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각 동별로 조선인과 일본, 외국인의 수와 이들의 직업까지 자세한 인구 통계가 나와있습니다.

당시 경성 인구는 모두 39만4천525명, 이중 조선인은 27만9천명입니다.

즉 전국의 단 3%가 외국인이었던 데 반해, 경성에서는 30%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주로 북촌에, 일본인들은 남촌에 살았는데 청계천이 아닌 황금정, 지금의 을지로가 기준선이었습니다.

직업 역시, 전국 조선인의 75%가 농ㆍ임ㆍ목축업에 종사한 반면, 경성의 조선인들은 상업과 교통업 종사자가 32%로 가장 많고 농업 등에 종사한 경우는 0.2%에 불과했습니다.

<황선희 /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1936년 이전에 유일한 인구 자료입니다. 전국적으로 조선은 농업 위주 사회였다면, 호구조서에 나온 서울 사람의 직업은 상업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도시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연합뉴스TV 신새롬입니다.

연합뉴스TV : 02-398-4441(기사문의·제보) 카톡/라인 jebo2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