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1 09: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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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유관순 징역 5년”…100년 전 치열했던 재판기록

[앵커]

1919년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재판 관련 기록에는 일본헌병에 저항했던 유 열사의 치열한 법정투쟁 흔적이 남았습니다.

김동욱 기자입니다.

[기자]

피고 유관순, 징역 5년.

‘병천ㆍ동면계 형사사건부’에 명시된 당시 공판 내용입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유관순 열사의 1심 재판 형량이 기록돼 있는 자료.

2007년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가 찾아내 공개하면서 증언이 아닌 기록된 문서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유관순 열사 등은 1심 재판에서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가중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유관순 열사는 이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습니다.

이같은 형량 차이는 유 열사가 얼마나 치열하게 법정투쟁을 벌였는가를 반증합니다.

유 열사가 일본헌병에 저항한 사실도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2심 판결문에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 중 부친이 사망한데 격분해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는데 무기로 내 민족을 죽이느냐”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판결문에 유관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일제가 17세 소녀의 이름을 맨 앞에 기록한 것은 최고 저항 인물로 지목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3·1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재판절차는 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의 3심제도로 운영됐습니다.

함께 재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은 유 열사는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결국 징역 3년형을 확정받은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순국했습니다.

연합뉴스TV 김동욱입니다.

dk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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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