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3·1 운동 상하이서 첫 타전…일본 은폐 급급

사회

연합뉴스TV 3·1 운동 상하이서 첫 타전…일본 은폐 급급
  • 송고시간 2019-03-01 13:45:35
3·1 운동 상하이서 첫 타전…일본 은폐 급급

[앵커]

오늘(1일)은 3·1 운동 100주년이 된 날입니다.

100년 전 한반도 전역에는 '대한독립만세'가 울려퍼졌는데요.

이 소식은 일본의 조작과 통제에도 전세계 신문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중국 상하이로부터 시작해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일본 언론은 은폐하기 급급했습니다.

김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 등 3·1 운동 소식을 보도한 전세계 신문 지면들입니다.

대한독립만세.

우리 민족의 하나 된 외침은 한반도 전역에 울려퍼졌고 일본은 이를 알리는 외신 보도를 막는 데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1919년 3월 4일 중국 매체들이 한인들의 독립운동 소식을 타전하기 시작했습니다.

3·1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중국 안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자국의 독자적 독립운동을 모색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됐습니다.

중국 국민당 기관지 민국일보는 제목을 '조선의 혁명운동'으로 뽑아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민국일보는 '존경할만하고 탄복할만한 조선인'이라는 기사에서 "한인들은 진정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기술했습니다.

주간지 매주평론은 "무력이 아닌 민의를 이용해 세계 혁명사에 신기원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상하이로부터 보도가 시작되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에 이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으로 3·1 운동 소식은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3·1 운동 소식에 자극을 받은 각 식민지 국가에서는 앞다퉈 독립선언문이 나오면서 민족적 독립운동이 촉발됐습니다.

반면 일본 언론은 일제 정부가 시키는대로 말하는 '앵무새'에 그쳤습니다.

연합뉴스 김지수입니다.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