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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연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1980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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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현장연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1980년 오늘'
  • 송고시간 2019-05-18 20:01:36
[현장연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1980년 오늘'

<박영순 /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 진행자> "1980년. 5월이 찬란한 것은 그날 그곳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살고 싶다는 아우성이 가득했고 버텨내야 한다는 절박한 몸부림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부신 5월은 그렇게 처절한 아우성과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렇게 광주는 아직도 살아 숨 쉬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그 날.

5월 18일, 7시부터 제7공수 특전단은 '화려한 휴가'라는 이름의 제1차 작전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자비한 구타로 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안종필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참여를 막았고 형제들까지 나서 만류했지만 죽어가는 선배들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만류하는 손을 뿌리치고 도청으로 달려갔습니다.

광주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폭도가 될 수 없었고 불의에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5월 24일, 광주 시민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해치고 독재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된 탄압으로 광주가 짓밟히고 있다고 호소하고 역사의 심판이 내려질 그 날까지 대한민국과 광주를 위해 동참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학생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5월 27일 새벽, 저는 도청 앞 광장에 크게 울려 퍼지도록 마지막 새벽 방송을 했습니다."

<안혜진 / 故 안종필 씨 조카> "저는 방금 전 인터뷰하신 이정림 할머니의 손녀이기도 하고 5·18 희생 영령이신 고 안종필의 조카인 20대 청년직장인 안혜진입니다.

저보다 훨씬 어렸던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삼촌이 도청에서 사망했을 때 큰형이었던 제 아버지는 할머니 대신 그 모질고 힘든 상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동생 시신을 확인해야 했고 쫓기다시피 삼촌을 망월동에 묻어야 했으며 차마 막내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아파서 할머니에게 시신조차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 평생을 아파하셨습니다.

제 아버지도 그때는 제 나이였을 청년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감내하고 그런 엄청난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처럼 광주의 1년은 5월부터 시작해서 5월로 끝난다고 이야기합니다.

1년 내내 5·18을 이야기하고 1년 내내 5·18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주에서 5·18은 애증이고 아픔이고 기억 그 자체입니다.

요즘 저희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삼촌의 기억도 점차 잃어가십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에는 아직도 그날이 한으로 남아서인지 눈물이 많아지셨습니다.

아픔은 기억으로 남고 슬픔은 한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아픈 기억이라 하여 잊기보다는 그 기억들을 다잡아 제 가슴에 간직하려고 합니다.

삼촌을 기억하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그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5월 그날 그 청년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 할머니를 위로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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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