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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초점] '삼성 신화' 이건희 회장 영면…비공개 영결식

경제

연합뉴스TV [뉴스초점] '삼성 신화' 이건희 회장 영면…비공개 영결식
  • 송고시간 2020-10-28 09:08:56
[뉴스초점] '삼성 신화' 이건희 회장 영면…비공개 영결식

<출연 : 연합뉴스TV 경제부 배삼진 기자>

[앵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지 나흘째 되는 오늘, 장례의 마지막 절차인 발인이 진행됐습니다. 영결식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진행됐는데요. 취재기자 나왔습니다. 잠시전 오전 7시반부터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삼성병원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는데요. 가족장이어서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기자]

예,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은 오전 7시반에 빈소에서 진행됐습니다.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했는데요. 고인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일부 사장단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결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회장의 종교에 따라 원불교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서 입관식 역시 원불교식으로 진행됐고, 어제도 원불교의 최고지도자인 전산 김주원 종법사가 방문해 법문을 읽었습니다. 1973년 원불교에 입한 이 회장은 생전 원불교 교단 발전에 기여하고, 덕망이 높은 교도에게 주는 법훈인 대호법을 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평소 자신이 믿어온 종교에 따라 장례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 역시 소 원불교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네요. 이 회장이 평소 원불교신자인 것은 드러내지 않았죠?

[기자]

네, 이 회장은 생전에 종교 생활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홍라희 여사의 경우 원불교 성직자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홍 여사의 모친이자 이 회장의 장모인 고 김윤남 여사는 1962년 원불교에 입교한 이후 교단에서 두번째 최고지위인 종사가 될 정도로 독실했습니다. 1987년 부친 이병철 회장이 별세했을 때도 김대거 종사로부터 법문을 받고 큰 위로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원남교당 신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역시 원불교에 입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앵커]

오늘 영결식 이후에 어떻게 이동할지도 관심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동선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죠.

[기자]

예, 어디로 향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지까지 이동은 두가지 방법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하나는 이건희 회장의 운구 행렬이 생전 이 회장의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돌며 임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방법입니다. 장지와 가까운 삼성전자의 수원 사업장과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일군 화성, 기흥 반도체 공장 등을 들릴 수 있습니다. 용산구 한남동 이건희 회장 자택이나 삼성전자의 영빈관인 승지원 등을 거쳐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승지원은 선대 이병철 회장의 집을 개조해 만들었는데요. 생전 이건희 회장은 이곳을 집무실로 많이 이용했습니다. 바로 인근의 고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의 애정이 긷든 한남동 리움미술관도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이 거쳐갈 유력한 후보지중 하나입니다. 또 서초사옥에는 운구차량이 대기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서초사옥을 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영결식 이후 운구차는 곧바로 장지로 이동하고, 대신 영정 사진을 실은 차량만 사업장과 집무실 등을 돌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지는 부친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가 묻혀 있는 에버랜드 인근 용인 선영이나 그 윗대를 모신 수원 가족 선영 가운데 한 곳이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이 6년 5개월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별세하게 됐는데, 구체적인 사인이 나오지는 않았는데요.

[기자]

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직접적인 사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부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신장 기능의 문제인 신부전은 신장에 이상이 생겨 혈액 속의 노폐물을 잘 걸러내지 못하는 병입니다. 노폐물이 체내에 쌓이면 수분이 배출되지 않으면서 합병증과 고혈압이 따를 수 있는데요.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 생활을 해던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신장 기능까지 나빠져 회복이 어려웠던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의 경우 평소 지병이 있어서 겨울에는 하와이 등에서 요양을 했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기자]

이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에는 잦은 폐 질환으로 고생했습니다. 1999년에는 폐 부근의 림프절에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유증으로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이 평소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추위만 느껴도 고열이 발생하는 현상으로 겨울이면 하와이나 오키나와 등 따뜻한 지역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이후에도 폐렴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입·퇴원을 반복해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앵커]

장례가 가족장으로 진행됐는데도 장례기간 많은 정재계를 비롯해 문화와 예술, 스포츠계 인사들이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애도했는데요.

[기자]

네, 별세 소식이 알려진 이후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사람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입니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형인 이맹희 전 CJ그룹 회장의 아들인데요. "나의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그룹과 CJ그룹은 승계를 놓고 경쟁이 시작된 이래로 50여 년간 냉랭한 사이였습니다. 2012년에는 고 이병철 창업주가 남긴 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시작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죠. 1, 2심 모두 이건희 회장의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선대에서 화해는 불발됐습니다. 하지만 3세 시대가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는데요. 2014년 이재현 회장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되자 이재용 부회장 등 범삼성가에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5대 기업 총수 가운데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장례식을 먼저 찾았습니다. 정 회장은 "한국 경제계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정 회장은 평소 이재용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는데요. 이 부회장의 전용 차량은 제네시스 G90입니다. 지난 25일에는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에 빈소에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제일 먼저 장례식장을 찾는 방식으로 답례를 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영민 대통령 실장을 통해 애도문을 전달하기도 했고,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 등 정계 인사들이 조문했고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사돈지간인 구광모 LG그룹 대표, 이건희 회장을 멘토로 생각했던 김승연 회장도 찾았습니다. 어제는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가 빈소를 찾아 본인이 느꼈던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는데요. 정씨는 이건희 회장이 있어서 이 나라에 자신감을 주셨다. 국제 어디나 나가서도 내가 한국인이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이 그야말로 삼성을 지금의 IT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놨는데요.

[기자]

이건희 회장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수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룹을 이끈 건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1987년 이후인데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임원들을 소집해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기업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입니다. 이때 가장 유명한 말이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며 제2 창업을 선언한 것인데요. 이건희 회장 취임한 1987년 9천억이던 시가총액은 2014년 318조7천억원을 기록해 340배로 늘었고, 매출은 9조9천억원에서 338조6천억원으로 34배로 커졌습니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로 70배로 늘었습니다. 임직원수는 10만여명에서 42만명으로, 수출 규모는 63억달러에서 1,567억달러로 25배로 늘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13%에서 28%로 4분의 1이 넘습니다. 브랜드 가치는 세계 100기업 가운데 6위로 올라섰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반도체 분야의 경우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 않나요. 앞으로 AI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더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자]

현재 삼성전자는 2분기 기준 세계 D램시장 점유율은 42%, 낸드플래시 분야는 33%로 1위입니다. 2위 사와의 격차가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으니까 거의 독보적인 상황입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제왕 자리에 있었던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결정을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고, 본인이 50%의 지분을 직접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50여차례 오가며 반도체 기술 습득을 위해 직접 노력했고, 일본 도시바와 NEC 등 일본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삼성의 반도체를 키우는 데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취임후 1년만인 1988년 처음으로 반도체사업 흑자를 내며 반도체는 이건희 사업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졌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 일화와 유명한 것이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이 있잖아요. 삼성전자의 품질경영을 선언한 사례였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1995년 애니콜 휴대폰에서 불량률이 10%를 넘자 이 회장의 지시로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웠습니다. 삼성 특검이후 경영에서 물러나 있었던 2009년에는 지펠 냉장고 폭발사고가 있었는데요. 당시에도 냉장고 21만대를 모두 리콜하라고 지시한 사건이 있었죠. 품질경영이 기업생존에 얼마큼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사건이 됐습니다. 2017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화재사건이 났을 때 전량 수거하고 삼성전자가 보상을 했던 것도 역시 이런 품질 책임경영의 연장선 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의 어록도 경영권에 적지않은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요.

[기자]

예, 1987년 취임사에서는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고요. 1993년 신경영선언 때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는 얘기는 다 알려졌죠. 당시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말했죠. 또 당시에 출근부를 찍지 마라, 출근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 또 과장과 부장은 5시에 퇴근하라고 해 .7·4제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회장이 사장단과 800시간 넘게 토론을 했는데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발언 33개를 지행33훈으로 정리해 지표로 삼았습니다. 2003년에는 인재경영을 강조하면서 천재 한 사람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고, 2010년에는 삼성전자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10년 이내에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제품이 사라진다며 긴장감을 불어넣었습니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에서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이 초일류기업 달성에 이바지하긴 했지만 과오도 지적되고 있는데요.

[기자]

예, 이 회장이 진행했던 사업중에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이른바 자동차광이었던 만큼 자동차 사업에 대한 애정이 컸는데요. 1995년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로 시작한 삼성자동차는 IMF 위기를 넘지 못하고 19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현재는 르노삼성차에 삼성카드가 19%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2005년에는 정치권과 검찰에 비자금을 제공한 안기부X파일 사건이 밝혀지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2008년에는 그룹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가 이 회장 지시로 금품 로비를 하고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승계과정에서 각종 편법이 동원됐다는 비난 의혹도 일었고, 무노조원칙 역시 과오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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