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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가 불쏘시개 된 '장애인 이동권' 논란…본질 탐구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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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여의도가 불쏘시개 된 '장애인 이동권' 논란…본질 탐구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 2022-04-09 23:02:33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비판하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논란, 어떻게 진행된 건지, 나경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정치권에서 확산된' 장애인 이동권'…논란어디로 가나 / 나경렬 기자]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시위 현장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시각장애인인 자신이 장애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김예지 / 국민의힘 의원>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소통을 통해서 마음을 나누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정치권을 대신해서 제가 대표로 사과드립니다."

"비문명적이다"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았다".

김 의원의 사과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이렇게 평가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발언 이후 이뤄졌습니다.

이 대표는 장애인 단체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지하철 시위의 방식과 대상에 문제가 있다며 여러 차례 비판해왔습니다.

지하철역 10곳 중 9곳엔 이미 승강기가 설치돼 이동에도 큰 문제가 없는데, 왜 지하철을 지연시키며 다수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하느냐는 주장입니다.

<이준석 / 국민의힘 대표(지난달 28일)>

"최대 다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민의 출퇴근 시간을 볼모 잡고 지하철 문에 휠체어를 넣는 방식으로…"

민주당과 정의당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 건 장애인 이동권에 정치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저상버스 도입 확대 등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들 정당은 장애인들이 지하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대중교통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시위하는 것이라고 이 대표를 비판했습니다.

<박지현 /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지난달 28일)>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에서 호소하는지,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대통령직인수위 위원들이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역 시위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동권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단체는 장애인의 날인 이번달 20일까지 시위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이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사과하지 않겠다, 무엇에 대해 사과하라는 건지 명시적으로 요구하라'고 답했습니다.

연합뉴스TV 나경렬입니다.

[이광빈 기자]

장애인 단체들은 왜 매일 아침 지하철 시위를 이어갔던 걸까요.

버스 앞에서,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홍정원 기자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봤습니다.

['지하철역서 휠체어 직접 타보니'…갈길 먼 장애인 이동권 / 홍정원 기자]

출근길 지하철역 승강장에서는 삭발식이 한창입니다.

만원 열차도 멈춰 섰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휠체어가 승차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열차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출근길 민폐라는 날선 비판보다, 장애인들은 차가운 무관심이 더 두렵습니다.

사실 이들의 이동권 시위는 20년째 진행 중입니다.

2001년과 2002년 각각 오이도역과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개선은 더딥니다.

정치인들은 약속을 번번이 깼습니다. 장애인들의 꾸준한 요구와 시위를 통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는 조금씩 진전을 보였지만, 교통약자의 편의성이 세심하게 고려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설치됐다는 지적이 뒤따랐습니다.

국회는 2004년 교통약자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2021년 기준으로 42%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실제로는 27.8%에 그쳤습니다.

<이재민/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사무국장>

"보통 버스를 갈아타잖아요. 바로 한번에 가는 게 없다고 한다면. 그럼 100%가 아니면 이동권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거죠."

실태 확인을 위해 직접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타봤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길 건너편에 있습니다.

신호에 쫓기듯 길을 건너 겨우 한 층을 내려왔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입니다.

"5호선으로 가야 됩니다, 우리는."

간신히 개찰구를 통과해 두번째 엘리베이터로 이동합니다.

단 두번 만에 승강장에 도착하나 싶었는데, 1호선입니다.

길이 복잡합니다.

"어디로 가라는 거야."

이번엔 오르막길입니다.

휠체어가 제자리를 돌 뿐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다시 계단을 만났습니다. 지하철을 갈아타려면 조금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엘리베이터까지는 100m가량 더 남았습니다."

세번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눈앞에 무빙워크가 보입니다.

올라갈 방법이 없어 무용지물입니다.

무빙워크는 조금 전 발걸음을 돌렸던 계단과 이어져 있습니다.

동선 배치가 아쉽습니다.

한참을 더 힘을 쓰고서야 도착한 5호선 승강장 코앞에서 다시 계단을 만났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한번 더 타야 합니다.

난관은 끝이 없습니다.

경사로를 따라 휠체어에 속도가 붙더니, 벽에 부딪힙니다.

"엘리베이터를 4번을 탔는데 지하철을 갈아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1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리프트에 타고 내리는 것도 일입니다.

두번만에 겨우 휠체어가 리프트 위에 올라섰습니다.

드디어 5호선 승강장, 하지만 타고 내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바퀴가 빠졌습니다.

놀란 승객들이 힘을 모아 꺼내주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정거장 오는 데 1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정착역에서는 가파른 계단이 리프트 사용금지 표시가 붙은 채 휠체어 앞을 막아섰습니다.

연합뉴스TV 홍정원입니다.

[코너:이광빈 기자]

앞서 홍정원 기자가 직접 휠체어에 의존해 지하철을 탄 것을 보셨는데요. 지하철역에서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느끼셨을 겁니다.

장애인을 위해 서울 지하철역 안에서 출구와 환승 엘레베이터를 찾는 지도가 몇년 전 시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지원해 카카오앱에 탑재가 됐는데요.

지도를 만든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님이 스튜디오로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의'가 무슨 의미인가요?

활동하시는 동안 이동권이 많이 향상된걸 느끼셨나요?

지금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권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는데, 다른 대중교통 이용 상황은 어떤가요?

앞으로 장애인 이동권 확대와 관련해 활동 계획은 어떻습니까?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이광빈 기자]

앞서 보신 것처럼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해 온 장장 20년의 시간 동안 숱한 대책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게 맡기면서 해결이 지지부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지난해 말 통과된 교통약자법 개정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국비를 보태 예산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큰데,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가 빨리 이뤄질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어서 차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부 지원, 의무 아닌 재량"…허울뿐인 교통약자법 / 차승은 기자]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일명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에는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의 운영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법 조항을 뜯어보면 국가가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는 이동지원센터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을 의무가 아닌 재량에 맡기면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다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의무적으로 규정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를 넣어도 사실 법을 위반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법안 심사 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의무 조항이 삭제된 건데, 기재부는 보조금 관리법 시행령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시행령에는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운송사업이 정부 보조금 제외 사업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사업 재원을 지자체로 옮겨 국비를 보다 신중히 쓰자는 의도라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 형편을 고려하면 사업을 이어가기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보급된 장애인 콜택시는 3,900여대로 법정 기준인 약 4,700대에 15% 넘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콜택시의 대기 시간은 서울의 경우 평균 32분에 달합니다.

장시간 기다리다 지쳐 호출을 취소한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계에 반영하지 않아도, 일반 택시와 비교해 이렇게 대기 시간이 굉장히 깁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동권이 기본권인 만큼 어느 정도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지만,

<조한진/대구대학교 장애학과 교수>

"이건 전체적인 욕구란 말입니다. 기본적인 것은 국가에서 깔아주고…"

'교통 약자를 위한 시급한 과제'라는 사회적 합의를 먼저 다질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지자체 중심의 복지 체계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큰 그림은 사회 서비스는 지자체가 해야 되는 거예요. 지역사회의 상황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국비를 지원하려면 해당 사업을 정부 보조금 제외 사업에서 삭제해야 하는데, 제외 사업에 함께 포함된 다른 취약계층 지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우려됩니다.

연합뉴스TV 차승은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베리어 프리.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입니다.

스웨덴은 1975년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신축 주택에 대해 전면적으로 배리어 프리를 실시했습니다.

독일은 2013년 모든 지자체들이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를 구현하는 여객운송법을 실행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불평하는 시민들의 눈빛을 찾기가 쉬지 않습니다. 차이에 대해 존중하는 의식이 사회 속에 짙게 배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낄까요? 차별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3.5%입니다. 차별이 없다는 응답 비율, 36.5%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또 버스 안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을 마주하는 일이 불편하지 않고 당연해질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요?

뉴스프리즘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