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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풍향계] 거대 양당 꼼수에 누더기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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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여의도 풍향계] 거대 양당 꼼수에 누더기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 2020-03-23 07:46:46

[여의도 풍향계] 거대 양당 꼼수에 누더기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앵커]



이번 총선에 처음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많이들 들어보셨을텐데요.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앞둔 비운의 존재가 되지 싶습니다.



거대 양당의 꼼수 탓인데요.



이번주 여의도 풍향계에서는 연동형 비례제의 잉태부터 누더기로 전락하기까지의 짧은 생애를 지성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서 국회 의석을 나누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렇게 하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돼서 울려 퍼지게 됩니다.



정치사에 새로운 주역이 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거대 양당이 분점해온 정치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실험은 결국 단 한 번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



잉태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등장으로 무력화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2월, 선거법 개정에 관심이 없는 거대 양당을 움직이기 위해 단식에 나선 군소 정당의 대표들.



<손학규 /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 "내 몸 하나 바쳐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고 충격이 된다면…"



정당 지지율이 의석 배분과 연동된다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은 축소되고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만큼 이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였던 겁니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대표의 단식투쟁에 민주당과 당시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자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법안을 패키지로 묶어 신속처리 안건에 올리기 위해 한국당을 배제한 채 4+1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지난해 4월 말, 4+1 공조로 선거법 개정안은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를 넘어 패스트트랙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이해찬 /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큰 제도를 굳건하게 세우는 아주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거법 개정을 막기 위해 당시 한국당은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엔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 카드까지 꺼내며 저항했지만,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필리버스터로는 승산 없는 싸움임을 깨달았던 한국당은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내 보였습니다.



<김재원 / 미래통합당 정책위의장> "이 법(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나면 곧바로 저희들은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몇개월 후, 설마 했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황교안 / 미래통합당 대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과 오늘 창당한 미래한국당은 한마음 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문재인 정권 심판의 대의를 위해서 손잡고 달려갈 것입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든 통합당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민주당.



<이인영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꼼수로 민심을 전복해서라도 무조건 국회 제1당이 되고자 한다면 미래통합당은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국민의 눈초리도, 체면도,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 위기감이 번지며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통합당의 위성정당이 최대 25석의 비례 의석을 가져가는 대신 민주당은 많아야 7석밖에 안 될 거란 전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슨 수를 쓰든 통합당의 원내 1당을 막아내자"는 것이 민주당의 새로운 명분으로 부상했고 진보진영의 분열과 내부 비판도 감수하며 결국 비례 정당을 만들어냈습니다.



<최배근 /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 "정당명은 '더불어시민당'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정치판에선 공수가 바뀌었습니다.



이젠 통합당이 민주당을 향해 더불어시민당은 '괴물 선거법'의 결과물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심재철 /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민주당은 비례민주당 창당에 앞서 국회를 유린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하고, 누더기 걸레가 되어버린 선거법을 무효화시켜야…"



여의도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묻습니다.



"남이 하면 '꼼수'고, 내가 하면 '선거 전략'이냐"고.



이렇게 거대 양당이 '밥그릇'에 눈이 멀어 경쟁적으로 비례 정당을 만들었지만, 급히 먹는 떡이 체한다고, 양쪽 비례 정당 모두 잡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름만 '정당'일 뿐 애초부터 독자적인 이념이나 가치는 없이 오로지 '총선 승리'란 목표만 있는 선거용 위장정당이니 예상했던 일입니다.



파열음은 미래한국당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이른바 '한선교의 난'으로 불린 비례 후보 공천 파동입니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단호한 결단'을 선언했습니다.



황 대표의 의지를 받든 선거인단의 불신임으로 결국 '바지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한선교 / 전 미래한국당 대표> "참으로 가소로운 자들에 의해서 저의 생각은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미래한국당 대표직을 이 시간 이후로 사퇴하겠습니다."



더불어시민당에선 참여 정당 중 민주당을 제외하면 모두 원외 정당에, 그것도 대부분 올해 들어 선관위에 등록한 신생 정당입니다. 그러다 보니 참 난감한 일들이 잇따라 불거집니다.



한 정당의 대표는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고, 다른 정당의 대표는 유사역사학에 심취한 인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정당들을 파트너로 삼은 민주당 내부에선 '부끄럽다'는 성토가 잇따라 터져 나옵니다.



<이낙연 / 더불어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 "현재의 전개가 몹시 민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상황이지요."



'정치 개혁'을 기치로 등장했던 연동형 비례제. 하지만 양당이 급조한 비례정당으로 결국은 누더기가 돼버렸습니다.



민주당까지 비례정당을 만들자 일각에선 민주당이 애초부터 공수처법을 얻어내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를 군소 정당에 내줬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옵니다.



가수 아이비의 '이럴 거면'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이럴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 멀쩡한 사람 왜 바보 만들어."



연동형 비례제가 민주당에 묻습니다.



"이럴 거면 왜 나를 통과시켰냐"고.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거대 양당의 근시안적 행태에 국민의 정치혐오는 깊어만 갑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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