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민의 알아BIO]는 제약·바이오·의료 이슈를 취재해 쉽게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의료용 주사기 수급 불안정[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강서구의 한 의원은 최근 주사기를 구하지 못해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해당 병원의 원장은 “온라인, 오프라인 어디를 뒤져봐도 ‘매진이다’, ‘품절이다’라는 얘기만 듣고 있다”며 “일주일은 쓸 재고가 있기는 한데 그 이후에는 하루 진료 인원에 제한을 둬야 할 정도”라고 토로했습니다.

일회용 주사기를 포함해 수액을 담는 포장백 등 각종 의료 소모품이 시중에서 빠르게 소진되고 있습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중동 사태의 여파로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의료용품들의 수급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는 건데요.

물론 최근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하면서 나프타 공급이 점차 안정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데다 양국 간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상황을 낙관하기에는 이릅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 방식과 관련해 미국과 이란 간 입장 차가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제 합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되는데요.

이에, 정부는 의료제품 수급 안정을 위한 선제적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동네 의원의 경우 주사기 등 의료소모품을 적게는 일주일, 많아야 한달치 재고만 갖고 있어 전쟁이 길어지면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번 [문형민의 알아BIO]에서는 중동 사태로 촉발된 의료 소모품 수급 차질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정은경 장관, 의료제품 수급대응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의료계로 번진 중동 전쟁 여파…"당장 재고 없는 건 아냐"

일회용 주사기, 수액 포장재, 의료용 튜브, 수술 장갑, 약 포장지 등 의료계에서 쓰이는 의료 소모품 대부분은 나프타를 이용한 합성수지 제품인데요.

국내 나프타 수요의 45%가 수입에 의존하고, 이 중 70% 이상이 중동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전쟁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이달 예상 나프타 수입 물량은 약 77만t으로 예년 대비 70% 수준입니다.

의료 소모품의 재고가 금방 동이 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인데, 지금 당장 의료 소모품의 재고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수액제 포장재는 3개월 분, 주사기와 주사침은 각각 1개월과 3개월 분량이 확보됐습니다.

복지부는 이 재고를 소진하더라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료로도 추가 생산이 가능하고, 상황이 더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산업통상부와 협력해 필수 의료 제품 생산을 위해 나프타를 우선으로 공급받을 방침입니다.

정부는 의료 소모품의 품절 사태를 두고 제품 생산 단계의 문제가 아닌 유통 단계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불안 심리가 의료제품 공급망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험이기에,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면 예외 없이 대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가격 담합, 출고 조절 등 법 위반이 포착되면 신속히 조사하겠다는 뜻입니다.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포장재 변경 시 신속 심사 체계를 마련했고, 복지부는 치료재료의 건강보험 수가 개선을 검토 중입니다.

서울 시내 한 약국[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동네의원도 한의원도 약국도 나프타 수급 부족 ‘직격탄’

하지만, 의료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연간 단위로 의료 소모품을 계약해 구매하는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과 달리, 규모가 영세한 병원들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 A씨는 현재까지는 주사기 및 수액세트 등 의료제품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공급 상황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는데요.

A 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아직은 괜찮지만 공급업체들의 비축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다른 병원의 병원장들과 얘기해보면 공급업체들의 비축 물량이 평균 10~30% 감소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과 의원의 B 원장도 짧게는 1개월, 길어도 3개월 정도 이후 의료제품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는 "생산업체들이 특정 품목은 1개월 내 비축 물량이 소진될 것으로 알려왔으며, 길어도 3개월 내 비축 물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며 "자칫하다 의료제품 품귀 현상으로 인해 제대로 진료를 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한의원에서 널리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부항컵 역시 같은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서울의 한 한의원 원장은 “한약 파우치, 일회용 부항컵 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며 “한약 파우치는 공급사에서 한 박스로 수량을 제한해 미리 구매해뒀다”고 전했습니다.

약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장은 "약국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 2주 정도의 재고는 있는 것 같다"면서도 "시럽통(플라스틱 약병) 가격은 세 배까지 올랐다는 얘기도 나오는 만큼, 전쟁이 더 길어지면 여파가 크게 올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온라인 의료 소모품 쇼핑몰 공지사항 캡쳐][온라인 의료 소모품 쇼핑몰 공지사항 캡쳐]


◇ 속 타들어 가는 환자 보호자들…아픈 반려동물 치료 어쩌나

집에서 개별적으로 주사기를 사서 간병해야 하는 시민들의 속은 더욱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매일 주사기로 투약해야 하는데 평소 주사기를 구매하던 온라인상에서 재고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중증 환자를 간병하는 일반 시민들이 주사기를 구입하는 온라인상에서 이미 품절이 시작됐습니다.

대다수의 판매 사이트에서 주사기가 품절돼 최대 3~5개월까지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단 공지를 띄우고 있고요.

아직 재고가 남은 판매처는 가격을 올렸는데, 100개 1만 원대였던 5㏄ 주사기가 5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보호자들은 평소엔 쿠팡이나 네이버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해왔던 게 주사기이다 보니 본격화된 품절 대란이 더욱 당황스럽게 느껴진다고 호소했는데요.

뇌전증을 앓는 아이를 키우는 김 모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정한 양의 약을 먹이기 위해 주사기가 꼭 필요한데 며칠 안에 배송되던 게 이제는 찾기 어려워져서 당황스럽다”며 “간병에 필요한 의료 소모품들을 미리 많이 사둬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습니다.

아픈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들도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하루 2~3회씩 피하 수액을 놓아야 하는데 주사기와 나비침이 품절되고, 그나마 파는 사이트들은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에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방법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SNS에 '사용한 주사침은 버리고 주사기에 새 주사침을 꽂은 후 일회용 봉투에 담아 냉장 보관하라'며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은경 장관, 치료재료 등 수급상황 점검[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옆 나라 일본도 진료 차질 우려…수급 경로 다변화 필요

이 같은 공급 불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혈액투석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의료 튜브 부족으로 환자 치료 차질 우려가 제기됐고요.

말레이시아에서는 의료용 장갑 원료 수급 불안으로 글로벌 공급 차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만 역시 원료 부족을 겪는 제조업체 지원을 위해 별도의 대응 체계를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료용 플라스틱 제품 공급망 전반에 걸친 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인데요.

다만, 중동 리스크가 완화 조짐을 보이면서 원료 수급 불안이 일부 진정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중동발 원자재 도입까지 3~4주가 소요되는 구조적 시차로 인해, 휴전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발생한 공급 공백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어섭니다.

아울러 기대와 달리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지금과 같은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 문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의료 제품 특성상 대체 소재 적용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액을 위주로 생산하는 한 제약사 임원은 “대체 소재 검토가 가능하더라도 안전성 검사와 포장재 변경·승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즉각적인 대응 수단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동 의존도가 높은 나프타 수급 경로를 다변화하는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이와 함께 주사기·수액세트 등 필수 소모품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전략 비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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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민(moonbr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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