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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연결] "여성·민주화 운동가 이희호"…회고 간담회

정치

연합뉴스TV [현장연결] "여성·민주화 운동가 이희호"…회고 간담회
  • 송고시간 2019-06-12 22:53:03
[현장연결] "여성·민주화 운동가 이희호"…회고 간담회

고(故)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가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연결해보겠습니다.



<장상 /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 "애닳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이희호가 상당히 매력적인 분이에요.

그분은 그냥 보면 좀 날카롭게 보이지만 아주 따뜻하신 분이에요.

나는 그분을 언제부터 알게 됐는가 하면 1958년부터 알게 됩니다.

나는 여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셔서 한국 YMCA연합회 총무가 되십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이화대학생이었어요.

내 나이 다 드러나네.

이화대학생인데 내가 YMCA운동에 아주 열성적이어서 내가 이대 회장할 때 이대학생의 한 1000명 정도가 회원이었던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죠.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명동 YMCA에 가서 이희호 여사님을 종종 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때 외국에서 유학하시고 오셔가지고 아주 날씬하고, 본래 날씬하시고 그리고 지성미가 철철 흐르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때부터 나는 이희호 여사님을 좋아하고 반했죠.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한 건 뭐냐, 이희호 여사님의 그 혜안과 결단에 대해서 놀라는 거예요.

한 번은 YMCA에 왔는데 이사들이 모여앉아 가지고 훌쩍거리는 분도 계시고 대단히 아무튼 슬픈 표정들이세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웬일이세요' 그랬더니 '희호가' 이분들이 다 어른이어서 그냥 희호야, 이럽니다.

'희호가 글쎄 시집을 가겠단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 올드미스가 시집 간다고 그러면 환영을 해야지 왜 그렇게 슬퍼하세요.' 왜냐하면 그때 1922년에 나셨으니까 1962년이면 40세예요.

그러니까 올드미스잖아요.

지금은 올드미스라는 말을 안 하지만 그 시절에는 올드미스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올드미스가 결혼하신다는데 왜들 이렇게 섭섭해하세요.' 그랬더니 '얘 말도 마라. 총각도 아니고 아이도 둘이 있고 그리고 희호는 외국 가서 공부까지 하지 않았냐. 그런데 이분은 외국은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제대로 공부를 안 했고 그리고 경제력도 없단다. 집도 한칸 없대.'

그리고 아무튼 그냥 이분들이 너무너무 희호가 아까우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이희호 총무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희호의 말이 더 기가 차다.' 그러세요.

그래서 '어떻게 기가 차세요.' 그랬더니 이희호 총무께서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의 큰 꿈을 도와드리고 싶다. 그래서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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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