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 받는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

[앵커]

오늘(28일)은 유럽의 여러 나라가 뒤엉켜 싸운 1차 세계대전이 터진 날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한 민족주의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게 발단이 됐는데요.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이 청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현지 분위기를 양태삼 특파원이 전합니다.

[기자]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에게 한 세르비아 청년이 두발의 총격을 가했습니다.

황태자 부부는 현장에서 숨졌고 암살범, 가브리오 프린치프는 체포돼 복역하다 병사했습니다.

이 사건은 1차 세계대전으로 번졌습니다.

오스트리아-독일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동맹이 벨기에의 서부전선과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으로 나눠 싸운 겁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암살범 프린치프에 대한 평가는 영웅과 살인자로 상반됩니다.

암살이 이뤄진 장소는 이제 박물관으로 변신해 그의 업적을 칭송합니다.

<아드난 블라이시치 / 사라예보 시청 대변인> "100년 전에는 1차 대전이 발생했지만 오늘 우리는 이를 뭔가 긍정적인 것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라예보를 사람들이 찾을 흥미로운 장소로 만들 것입니다."

보스니아 서부 오브리야이 마을에 있는 프린치프의 생가도 복원돼 박물관으로 탈바꿈합니다.

<가브릴로 밀로 프린치프 / 가브리오 프린치프 손자> "이 집이 할아버지가 두발의 총을 발사했던, 사라예보 역사상 가장 눈부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나 친 세르비아쪽의 반응은 다릅니다.

프린치프의 묘지에는 테러범이라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고, 사라예보 거리에는 살인자라는 낙서가 자주 눈에 띕니다.

프린치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다 보니 보스니아 사라예보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연합뉴스 양태삼입니다.

(끝)

당신이 담은 순간이 뉴스입니다!

ⓒ연합뉴스TV,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