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인 네 명을 포함해 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미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애도와 함께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증오범죄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김지수 기자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김 기자, 어서 오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이번 사건이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냐 아니냐'가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어요. 어떤 논란인지 정리해주시죠.
[기자]
아시다시피, 이번 총격 사고로 희생된 여덟 명 중 여섯 명은 한인 네 명을 포함해 아시아계입니다. 용의자가 자신에게 '성 중독 문제가 있다'고 진술했고, 경찰이 이를 서둘러 공개한 뒤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은 스물한 살 백인 남성으로, 범행 동기가 인종적인 게 아니라면서 자신이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성 중독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성에 대한 충동과 강박을 느끼는 정신질환인데, 용의자는 스파와 마사지숍이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대상으로 여겨 이를 없애려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다만, 경찰은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충분히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경찰이 용의자 진술을 사건 발생 당일에 여과 없이 공개했다는 겁니다.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이런 비판 속에, 범행 동기가 인종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앵커]
범행 동기를 두고 혼란이 큰 것 같습니다. 성 중독 가능성이 크다는 경찰 발표를 뒷받침할 만한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요. 인터넷상에서는 증오범죄라는 추정이 가능한 SNS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기자]
CNN 방송이 용의자 롱의 범행 동기가 성 중독 문제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CNN은 용의자와 함께 재활시설에서 생활했다는 한 남성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남성은 용의자 롱이 성중독 문제로 괴로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재활시설에 있는 기간에 성적인 행위를 위해 마사지숍에 갔다고 털어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용의자에게 성 중독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이를 유력한 범행 동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번 사건이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가장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건 용의자 롱이 최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SNS 글입니다. 글에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에 맞서 싸울 것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로 지칭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코로나19 은폐에 관여돼 있다며 중국인들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모든 미국인은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도 적었습니다. 이 글이 용의자가 쓴 게 맞다면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앵커]
경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사건 전에도 비슷한 사건은 자주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는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미 정치권은 물론이고 저명인사들도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죠.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총격 사건에 대해 아시아계 미국인의 걱정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최근 미국에서 급증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범죄인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백인 우월주의와 미국 내 테러 세력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습니다. 지난 11일 연설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노린 증오범죄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미 역사상 첫 흑인이자 첫 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뜻을 전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범행 동기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서도 미국인 모두 어떤 형태의 증오에도 침묵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총기 폭력을 계속 무시해왔다"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도 촉구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폭력의 증가는 더욱 커지는 위험이 되고 있다"며 "공동체와 리더들이 증오를 멈추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앵커]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장 큰 불안감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일 텐데요.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기자]
미국 현지 한인회 대표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애틀랜타한인회 측은 이번 사건이 인종 혐오 범죄로 확인된다면 교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책을 찾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 증가는 코로나 때문으로 보인다며 특히 폭력에 취약한 고령층의 피해 예방 활동에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한인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인에게 닥치는 문제라며 지역사회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범행 동기로 용의자의 성중독 문제가 거론되자, 한인 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LA 한인회는 이번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라며 성 중독을 범행 동기로 보는 건 왜곡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증오범죄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현지 언론들이 경찰 발표를 인용해 용의자가 성 중독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 증오범죄 가능성을 애써 감추는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현지 경찰의 대응과 관련해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어요. 경찰이 언론 브리핑에서 용의자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면서요.
[기자]
경찰이 용의자에 대해 성 중독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에게는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말해 거센 논란에 직면했습니다.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의 제이 베이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용의자에 대해 "그는 완전히 지쳤고 일종의 막다른 지경에 있다"며 "총격을 저지른 어제는 그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경찰은 용의자 롱이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고, 증오범죄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시아계 여성들에게 총을 난사한 용의자 롱이 겪은 하루가 "나쁜 날"이었다고 경찰이 말하는 동영상은 인터넷에 급속히 퍼졌고 미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네티즌들은 "백인 용의자에 대한 특혜다", "희생자에 대한 또 다른 가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앵커]
이번 기회에, 인종적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기자]
아시아계 미 연방의원 사이에서 증오범죄를 막을 수 있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계인 주디 추 연방 하원의원은 "아시아·태평양계를 겨냥한 증오범죄에 맞서는 행동을 지금 당장 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증오범죄를 막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 하원은 이번 주 안에 청문회를 열어 추 의원이 발의한 반 증오범죄 법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리처드 블루먼솔 연방 상원의원은 이번 사건이 증오범죄를 막고 총기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 활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의견이 같은 공화당 의원들과 힘을 합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은 "온 나라가 한목소리로 '반 아시안 증오범죄를 멈추게 하라'고 외쳐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를 위한 이익단체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인종적 증오범죄가 3천800건 가까이 보고됐습니다. 지난해 이전에는 연평균 약 100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폭등'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앵커]
이번 연쇄 총격 사건이 일으킨 파장이 매우 큰데요. 현지 언론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만연한 '아시아계 혐오' 병폐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 용의자가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듯한 경찰의 초동 수사 결과에 대한 비판이 거셌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라는 진단도 이어졌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이후 영국, 호주 등 서구사회 전체적으로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이 위험 수준에 치달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시카고트리뷴은 경찰의 초동수사 결과 발표를 비판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설명하며' 용의자에게 정말로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고 언급한 점이나 용의자의 성중독 가능성을 거론한 점을 들어 경찰이 용의자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는 등 인종차별주의적 언행을 일삼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다시 일고 있습니다.
[앵커]
미국 수사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길 바라봅니다. 실상이 드러나야 해결책도 나올 수 있겠죠. 김지수 기자 수고했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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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