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며 '고문 기술자'로 알려졌던 이근안 전 경감이 사망했습니다.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며 고문을 정당화 했던 이 전 경감은 끝내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수강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남영동 1985' 중에서> "우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합시다. 정 할말 있으시면 발가락을 까딱 거리시고요."

1980년대 중반, 당시 민주화투사였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이 정권으로부터 당한 처절한 고문의 기록을 담은 영화 '남영동 1985'.

물고문부터 전기고문까지 스크린을 보고 있기 어렵게 만드는 잔혹한 고문기술을 재연했습니다.

생경했던 고문 기술을 자행해 '고문 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전 경감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88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 전 경감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김 전 의원 뿐 아니라 납북어부 김성학 씨, 학림사건의 민병두 전 의원 등을 고문했습니다.

'불곰', '박 중령' 같은 가명 뒤에 숨어있던 이 전 경감은 1988년 언론 보도를 통해 실체가 드러나자 사표를 내고 잠적했고, 10년이 지나 자수했습니다.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고, 출소 후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듯 했지만 속내는 달랐습니다.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문기술자'라는 명칭에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해 비난을 샀습니다.

그리고 이어 낸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행위는 애국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근안 / 전 경감(지난 2012년 자서전 출판기념회)> "어린 나이에 6.25를 겪으면서 피해 현장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주특기가 대공을 택했어요. 그 당시야 그게 애국 아니면 누가 가정도 모르고 열심히 목숨 내놓고 일을 했겠어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전 경감의 사망 소식에 끝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연합뉴스TV 김수강입니다.

[영상편집 진화인]

[그래픽 서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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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강(kimsoo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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