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탈냉전 시대였던 1995년, 한중러 그리고 북한의 치열한 외교전이 담긴 문서들이 공개됐습니다.

새로 수교를 맺은 한중러 관계를 둘러싸고 남북 간 견제 과정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박수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95년 청와대에서 열린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역사적인 중국 국가원수의 첫 국빈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사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당시 북한의 견제와 반발이 고스란히 확인됐습니다.

북측은 "한중이 고위 인사 교류를 하는데, 북한은 왜 대만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느냐"라면서 중국 측에 '대만과의 수교'를 검토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을 너무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고, 장 주석은 방한 전 이례적으로 주중북한대사관이 주최한 당 창건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북·중 우의'를 강조하며 북한을 달랬습니다.

북한이 겉으로는 장 주석의 방한에 대해 '북·중 우호 관계 유지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태도를 보였지만, 사실은 한중 밀착으로 인한 소외감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셈입니다.

반대로 우리 정부는 북러 관계를 견제했습니다.

러시아 정부에 이듬해 만료되는 북러 우호 조약을, 한러 관계 발전을 위해 폐기하라고 촉구한 겁니다.

해당 조약은 1961년 김일성 주석이 구소련을 방문했을 당시 체결한 조약으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담겼습니다.

우리 정부의 집요한 요구에 러시아는 주러 공사를 초치해 한국이 '간섭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낼 정도였는데, 결국 러시아 정부는 그해 기존 조약을 폐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측은 러·북 관계가 과거의 '이념적 관계'에서 '실용적 관계'로 변했다고 규정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 상황.

북러는 재작년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이 명시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고 혈맹관계로 발돋움했지만, 한러 관계는 꽁꽁 얼어있습니다.

연합뉴스TV 박수주입니다.

[영상취재 신재민]

[영상편집 함성웅]

[그래픽 김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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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주(soo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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