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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영 신화서 그룹 해체까지…'비운의 기업인'

경제

연합뉴스TV 세계경영 신화서 그룹 해체까지…'비운의 기업인'
  • 송고시간 2019-12-10 12:35:28
세계경영 신화서 그룹 해체까지…'비운의 기업인'

[앵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경영'을 외치며 성공 신화를 썼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추락했는데요.

고인의 파란만장한 삶과 대우그룹의 흥망사를 배삼진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던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1967년, 30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원단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해 첫해부터 58만달러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습니다.

직접 샘플 원단을 들고 대우의 첫 브랜드인 '영타이거'를 알렸는데, 동남아에서는 고인을 '타이거 킴'으로 불렀습니다.

'세계 경영'의 밑거름이 된 대우의 탄생은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시작됩니다.

1976년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83년 대우전자와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키웠습니다.

1990년대에는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해 세계 경영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1998년 말 대우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는 396개의 현지 법인을 포함해 모두 589곳에 달했고, 해외 고용 인력만 15만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대우그룹의 자산총액 76조원으로, 재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세계 경영 신화는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 다음해 전경련 회장을 맡은 고인은 위가 탈출의 해법으로 '수출론'을 외쳤지만 김대중 정부 관료들과의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대우차와 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등으로 자금난에 빠졌습니다.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구조조정안을 내놨지만 모든 계열사가 기업개선작업인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대우그룹은 1999년 결국 해체됐습니다.

고인은 분식회계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000여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특별사면됐습니다.

외환위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일각의 시각도 있지만 차입에 기댄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결과라는 비판도 많습니다.

연합뉴스TV 배삼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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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