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후진국형 안전사고…부실공사와의 전쟁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경제

연합뉴스TV 후진국형 안전사고…부실공사와의 전쟁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 송고시간 2022-01-29 22:00:10
후진국형 안전사고…부실공사와의 전쟁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17명의 사상자'가 생긴 '광주 학동 참사'가 일어난 지 7개월 만에 광주의 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이 20일 가까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원칙을 무시한 건설 현장의 악습과 기업의 이윤 추구가 낳은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입니다. 김경인 기자의 보도입니다.

['학동참사'에 이은 아파트 붕괴…예견된 참사였다 / 김경인 기자]

지난 11일 오후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입니다.

아파트 내·외벽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39층부터 23층까지 무려 16개 층이 도미노처럼 붕괴 됐습니다.

붕괴 직전 39층에서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거 무너졌다. 저거 무너졌다. 저거 무너졌다. 거기도 떨어졌다."

시공사는 업계 9위인 HDC현대산업개발.

지난해 6월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광주 학동4구역의 시공사 역시 현대산업개발이었습니다.

'학동 참사'는 경찰 수사 결과 해체계획서 미준수, 불법 재하도급, 공사비 후려치기, 계약 비리 등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폐단이 확인됐습니다.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도 역시 원칙과 규정이 철저히 무시됐습니다.

고층 건물에 콘크리트 타설을 하려면 아래 3개 층에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동바리를 설치해야 합니다.

현장에서는 최소 37층과 38층, 피트층에는 설치돼 있어야 했지만 이미 철거한 상태였습니다.

피트층에 수직벽인 '역보' 7개도 무단으로 설치했습니다.

무게만 수십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붕괴가 진행된 면적과 겹칩니다.

<조창근 / 조선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아래층에 2개 층 정도는 지지대를 충분히 대고, 아직까지 양생 중이기 때문에 안전을 확보를 해야 하는데 이 가벽이 무게가 추가됐고…"

전문가들은 영하의 날씨에 콘크리트 타설을 강행하고, 짧은 양생 기간, 재료 등도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37층과 38층 바닥은 각각 7일과 6일 만에 타설됐고, 38층 천장도 8일 만에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최명기 /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가장 중요한 게 콘크리트 자체가 이런 하중에 대해서… 충분히 버텨줄 수 있었던 강도가 나왔으면 실제 이런 문제는 안 생겼던 거죠."

하청 업체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의 지시로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결국 오는 11월 입주를 앞두고 공기가 한 달 가까이 지연되자 공사를 무리하게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조창근 / 조선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11월경 입주 예정이면 사실은 공정이 많이 쫓겨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아마 공기를 서둘다 보니까 좀 간과했던 부분들이 많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화정 아이파크'는 지난 30개월 동안 13건의 행정처분과 14건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습니다.

주민들로 구성된 공사 피해 대책위원회가 수백 번의 민원을 넣으며 경고를 보냈지만, 대부분 무시됐습니다.

<최명기 /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이런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은 기업이라든지 발주자가 너무 안전이나 품질을 신경 쓰는 게 아니고, 실제 너무 이익에 눈이 멀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거죠."

'빨리빨리'를 외치며 안전과 품질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이익을 쫓는 게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현실입니다.

연합뉴스TV 김경인입니다.

[이광빈 기자]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를 비롯해 건설현장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인명사고는 한국 사회 고질병인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불감증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윤솔 기자입니다.

[건설현장 일주일에 4명 목숨 잃어…'안전제일' 구호뿐 / 윤솔 기자]

인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의 사망 사고, 서울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의 노동자 추락사, 광주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가 굴착기에 깔려 사망한 사고까지.

잇단 사망 사고는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216건입니다.

일주일에 최소 4명꼴로 노동자가 사망한다는 뜻입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는 불법적인 관행이 사고를 부른다고 입을 모읍니다.

원청업체와 용역계약을 맺은 기업이 다시 다른 하청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일이 횡행하다는 건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가 자행되고, 적은 인원으로 빨리빨리 작업하려니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는 겁니다.

<복기수 / 타설 공정 건설노동자> "타설하다가 많이 무너져서 깔려서 들어가 본 적도 있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거든요. 저가 낙찰제로 인해서 불법 하도급이 늘어나고 타설 팀장들이 비용 절감하느라고 인원수 적게 들어가고…"

<김훈 / 알루미늄폼 공정 건설노동자> "28일 동안은 거푸집 존치하고 해체해서는 안 되는데, 그 기간을 턱없이 부족하게. 건설현장에 당연시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고를 막기 위한 현장 점검 체계가 무너져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건설노동자들은 감독 기관과 시공사 간 짜고 치는 식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현장점검'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적으로 규정된 감리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안형준 /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 "시공사가 제대로 시공하는지 매뉴얼대로 하는지 안전 수칙 지키는지 관리하고 감독하는 게 바로 감리제도입니다.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관할 구청에 공사 중지 명령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셋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정신 차리면 사고가 안 납니다."

불법 관행을 뿌리 뽑고 관리·감독 체계가 실효적으로 정비되지 않는 이상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합뉴스TV 윤솔입니다.

[코너:이광빈 기자]

화면에 나온 통계를 보시죠. 2020년 건설업 부분 근로자 수는 2011년에 비해 30%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하루 1명 이상의 건설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게 이 땅의 현실입니다.

재해자 수도 마찬가지로 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강해지고 있는데, 건설 현장에서 재해율과 사망률은 오히려 높아진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가 1위인 국가, 바로 한국입니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재해 사상자 수가 2011년 21명에서 2020년 58명으로 증가했습니다. 2018년 사상자는 104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미비한 법 제도가 사고를 키워온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은 계속돼왔는데, 관련 입법 진행 상황은 거북이걸음이었습니다.

그제부터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중대한 인명 피해가 날 경우 사업주를 형사처벌 할 수 있는 법인데요.

그런데, 이 법으로는 건설 현장 생태계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발주처의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건설 현장에서 발주처가 공사 기간을 줄이거나 비용을 절감하게 되면 노동자는 위험한 작업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부실 공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 제·개정이 추진되는 건설안전특별법 등 건설안전 3법은 발주사에도 안전관리 책임을 부과합니다. 책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가 나면 관련자가 처벌받는 내용입니다. 고질적인 불법하도급과 입찰 담합 등의 병폐를 막자는 것이기도 한데요.

법안은 건설사 등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복 규제라는 주장도 제기돼왔습니다.

그런데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의 예외인 발주사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조업을 주로 상정해놓고 입안된 만큼, 건설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돼왔습니다. 건설업의 특성상 발주부터 감리까지 전 과정에 걸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깔려있지 않으면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광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현장 인력 활용도가 높은 산업군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본질로 다가 설 수 있을까요. 김지수 기자입니다.

[중대재해법 본격 시행됐지만…불안감 속 개선 목소리도 / 김지수 기자]

국내 주요 건설현장들이 일제히 휴무에 들어갔습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서 예방차원에서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초까지 현장 작업을 쉬기로 한 겁니다.

명절 전후로 공기 단축을 위해 속도를 내던 예전과 달라진 모습인데, 사고 위험이 높은 공정은 가급적 자제하기도 합니다.

작업 특성상 사고 위험이 높은 건설, 철강 관련 기업들은 우선 안전관리 조직 확대에 나선 상황.

현대건설은 안전지원실을 본부로 격상하고, 대우건설도 품질안전실을 안전혁신본부로 확대 개편했습니다.

포스코는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했고, 롯데케미칼도 안전환경 전문가를 두 배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전력은 감전·추락 등 사고에 대한 안전요건이 충족돼야만 현장 작업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현장 근로자 판단으로 작업을 일시 중단하는 '작업중지권'을 도입한 삼성물산은 제도 평가와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다만 이런 준비에도 업계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경영책임자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고, 처벌 수위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무겁지만, 법 적용 대상인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운영자와 관리자가 다를 경우 법상 예방의무 이행 주체가 뚜렷하지 않고, 기업마다 다른 인사구조로 혼란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대선 이후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노동 과제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을 꼽고 있습니다.

<김용춘 / 전경련 고용정책팀장> "모호하게 규정이 돼 있고 처벌 수준은 굉장히 높다 보니까… 안전예방에 대한 노력도 하고 있지만 공포감이 심하다 보니 최근에는 1호 대상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업 자체를 중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재정이나 인력 등 부족으로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옵니다.

<추문갑 /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중소기업 같은 경우에 99%가 오너이면서 곧 대표인데…구속해 버리면 그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근로자로 연결될 수밖에…"

법 시행 과정에서 중소기업 대응 역량을 키울 정부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단 지적입니다.

<박종식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중소기업들은 (안전)전담 관리자를 도입하기 힘들죠. 형식적으로 서류 작업을 해버리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중소기업들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거나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도 안착까지 현장에선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법 시행을 계기로 노사가 함께 실제 사업장 내 위험을 찾아내고, 관리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연합뉴스TV 김지수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이 법을 둘러싼 잡음은 여전합니다. 98%에 이르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은 유예됐고 채 2%도 안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 '누더기 법안'이다. 시민사회의 시선은 이처럼 곱지 않습니다.

기업의 입장 역시 불만 가득합니다. 기업의 책임만 강조한 비현실적 규정이다. 최근엔 사주의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로 대표를 2명으로 늘리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내몬다며 법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입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만드는 과정에서 억울한 노동자의 사망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최단 시간에 최대 이윤 추구냐. 안전경영이냐.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집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